Note 007 · 주역
곤괘 ― 묵묵히 받아주고 길러내는 사람
빛나지 않지만, 그 사람이 없으면 모든 게 멈추는 자리가 있어요.
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다 챙기고,
누가 와도 다 받아주고 품어 길러내는 사람.
주역에서 이런 사람은 곤(坤)괘에 가까운 사람이에요.
곤(坤)괘는 땅이라는 뜻이에요.
이런 사람은 거창한 일에서만 그런 게 아니에요.
모임이 끝나면 말없이 남아 그릇을 치우고,
누가 아프다고 하면 가장 먼저 따뜻한 죽을 들고 나타나요.
생색 한 번 없이, 빈자리를 묵묵히 메우는 손길이 늘 그 사람이에요.
곤은 건과 짝을 이루는, 가장 순수한 음(陰)이에요.
하늘이 에너지를 위에서 펼친다면, 곤은 아래에서 그 에너지를 다 받아 길러내요.
곤의 에너지는 받아들임과 키움이에요. 대지가 씨앗을 가리지 않고 품어 싹 틔우듯,
곤괘가 강한 사람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품어요. 그 넓은 포용이 곤의 얼굴이에요.

자연으로 보면 곤은 땅이에요. 땅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요.
그저 모든 걸 떠받치고 길러낼 뿐이죠. 곤괘가 강한 사람도 그래요.
공을 내세우지 않고, 묵묵히 토대가 돼요.
옛사람들은 곤을 어머니, 온 가족을 말없이 떠받치는 자리에 빗댔어요.
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는 후덕재물(厚德載物)이 곤의 말이에요.
그래서 곤의 사람은 ‘없으면 비로소 보이는 자리’예요.
있을 때는 너무 당연해서 고마운 줄도 모르다가,
그 사람이 빠지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걸 떠받치고 있었는지 깨닫게 돼요.
드러나지 않는 헌신이 곤의 가장 깊은 힘이에요.
그런데 땅은 다 받아주다 자기를 잃기도 해요.
곤에는 자기소진의 그늘이 있어요. 경계 없이 모두를 품다 보면,
정작 자기 자신은 가장 나중으로 밀려나죠.
곤의 성숙은 ‘다 받아주는 것’에 ‘나도 받아야 한다는 것’을 더하는 데 있어요.

그러니 곁에 곤이 강한 사람이 있다면, 받기만 하지 말고 가끔은 먼저 챙겨 주세요.
곤의 사람은 ‘난 괜찮아’가 입버릇이라, 정작 자기가 지쳐 있을 때도 손 내밀 줄을 모르거든요.
누군가 ‘오늘은 네가 좀 쉬어’라고 말해 줄 때, 늘 주기만 하던 사람이 비로소 숨을 돌려요.
내 안의 곤은 언제 켜지나요. 나서지 않고 뒤에서 다 챙기고 있을 때,
그 자리에 곤의 땅이 펼쳐져 있는 거예요.
땅도 가끔은 비를 받아야, 메마르지 않고 계속 길러낼 수 있지요.
곤이 강하다는 건 결코 자기가 없다는 게 아니에요.
누군가는 묵묵히 떠받쳐 줘야 그 위에서 다른 것들이 자라니까요.
다만 그 너른 품이 나를 메마르게 하지 않으려면,
다 내어 주는 만큼 나도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해요.
— END OF NOTE